소설 택리지는 총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 책이 아닌 ‘이중환’이라는 사람의 이야기
『택리지』라고 하면 알지만 ‘이중환’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현 시대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에서도 그의 존재는 외면당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택리지』 하나 달랑 남긴 것을 제외하면 30여 년 동안 그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중환, 유토피아를 묻다』에서는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책, 『택리지』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중환’이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유배를 다녀온 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중환은 명문집안 출신으로, 당대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여건 속에서 24세에 병과에 급제, 공직에 진출한 후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누리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30대 중반,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두 번 다녀옴으로써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그리하여 팔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중환이 가거지를 찾는 동안, 그가 겪은 고통만큼이나 여정도 험난했다. 자연 경관뿐 아니라 발품 팔아 직접 눈으로 본 것들, 그리고 그의 고민과 번뇌, 여행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외로움 등을 『이중환, 유토피아를 묻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배를 통해 잃을 것이 또 있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욕스럽다고 표현할 만큼 바닥까지 내려간 의욕상실, 어린 나이에 시련을 겪는 아들과 마음껏 사랑해 주지 못한 아내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이중환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백성을 위한 정치라고 소리쳤지만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정치하려는 사람은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 조정임을 토로하며, 조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작은 행복만이라도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백성의 평안을 찾아보려는 그에게서 우리 땅과 민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 학문의 즐거움보다 기행을 더 즐겼던 사대부, 이중환
이중환은 집을 떠나 산수를 구경했던 것이 제일 즐거웠다고 말할 정도로 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유배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사대부라는 허울에 둘러싸여 자신과 가문을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마음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체면을 중시했다.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감춘 채 말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긴 했지만 목호룡이라는 사람을 좋아한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내면에서 원하는 무언가를 해소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중환이 유배를 두 번 다녀온 뒤, 사대부라는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가족과 환경을 모두 뒤로 한 채 자기 쉴 곳을 찾아 나섰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던 기행을 몸소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는 요즘 정치인처럼 정치에 대한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 몰락한 사대부, 자기 한 몸 의지할 곳을 찾아 떠났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적 없이, 정처 없이 떠났다고 볼 수 없다. 이중환은 사대부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해 줄 세계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 즉 살기 좋은 곳인 가거지可居地였다.
전국을 떠돌며 그가 눈으로 본 것은 지리에 관한 것만이 아닌 땅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사농공상士農工商 모두 그리고 그 속에 포함되지 않은 민초들도 만났다. 그 가운데에는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러는 나름대로 혁명을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각 지형이 다르듯 그들이 꿈꾸는 세상도 다 달랐다. 이중환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가거지와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이상으로 삼았던 사대부 사회가 구제불능일 정도로 타락해 있어 전국 어디를 돌아보아도 살 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살아 움직이는 장터나 비린내 나는 포구 등 자연과 서민들의 모습에 눈을 돌림으로써 그 해답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이상향의 절대적 조건만을 좇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가거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박경남은 우리나라 역사와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재해석하는 즐거움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 왕의 독서법> <척독, 마음을 담은 종이 한 장> <사임당이 난설헌에게> <소설 징비록> 등이 있다.